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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에 대하여.

전원속의내집 0 3,166
담당자
휴대폰번호
010-2314-3392
홈페이지
http://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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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을 짓는 일생일대 큰 사건을 치룬 애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예비 건축주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번은 그 마지막 회로 준공 후 입주와 사는 이야기다.

캔버스 같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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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벽지로 가득한 크고 무거운 샘플 책과 각종 문 사진이 실린 책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 숙제는 집에서 하는 거니까. 수많은 벽지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 걸 찾아내고 고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내가 생각하는 주방에 대한 기대, 내가 상상하는 다락에 대한 바람들을 나누면서 우리는 막연하기만 했던 것들을 하나씩 구체화시켰다. 실크 벽지가 기본이지만, 우리는 합지를 선택했다. 합지는 종이를 겹쳐 만들어 친환경적이고 나중에 벽지 위에 바로 페인팅도 할 수 있다. 종이라서 어느 정도 습도 조절 역할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오염이 쉽고 실크 벽지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지만.

우리가 내장재를 선택한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나중에 집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보다 쉽게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다른 하나는 ‘가능한 친환경적일 것’이다. ‘가능한’이라는 단서를 굳이 단 것은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크 벽지 대신에 합지를 고른 이유가 바로 이랬다. 집안의 모든 문을 민무늬 판재로 선택한 것도 나중에 꾸밀 것을 미리 고려한 까닭이다. 훗날 아이방 문에는 함석판을 달고 그 위에 칠판 시트지를 붙여 낙서도 하고 자석도 붙이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집이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언제든 원하는 그림을 맘껏 그릴 수 있는 새하얀 캔버스이길 바랐다.

이제는 아내가 불타오를 때

 

인테리어 협의에 들어가자 잠잠했던 아내가 불타오른다. 바닥, 벽지, 타일 등을 고르고 돌아온 다음날, 우리는 커피숍에 들러서 책도 보고 글도 쓰며 집짓기를 잠깐 잊고 휴식을 즐겼다. 문득 매장 내 조명을 돌아봤다. 펜던트 등이 예쁘다. 아내에게 별 생각 없이 가볍게 말을 건넸다. “등 예쁘네.” 그때부터 우리는 한 시간 이상 집에 어떤 조명을 할 건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점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반면 아내는 마냥 신이 났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더 조명에 대해서 논의를 했다. TV를 보는데 아내는 화면에 집중을 못한다. 아니 애초부터 TV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내는 옆에서 열심히 검색하며 조명을 살핀다. 돌연 심각하게 어제 고른 현관 타일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뭔가가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처음엔 건성으로 대꾸하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TV를 끄고 아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문득, 집의 공간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 나 혼자 불타올랐던 일이 떠오른다. 지금의 아내는 몇 주 전의 나다. 다만 서로의 관심 분야가 달랐을 뿐. 이해가 된다. 내가 경험한 열병을 아내는 이제 시작한 거다. 이 생각을 말했더니, 아내도 그 때의 내 마음이 이해가 된다고. 우리는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소리 내어 웃었다. 참 많이 닮은 거 같으면서도 다른 아내와 나. 아직 주방도 남았고, 조명도 남았다. 입주까지는 이제 한 달이 채 안 남았다. 그동안 아내는 불타오르고 설레고 기뻐하고 행복해 할 테지. 아내가 충분히 이 순간을 즐기기를.

Mission impossibleNoMission Exc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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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집을 짓기로 결정하기까지 헤맨 기간(3년 정도)이 길었던 까닭일까, 우리 부부는 마감재 대부분을 직접 선택했다. 1층 주방 및 식당은 화이트 워시 오크 바닥재, 벽지도 화이트로 골랐다. 작은 집이 좀 더 넓어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몫 했지만 아내가 하얀 주방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구조 특성상 1층 벽이 2층까지 이어져서 2층도 거실 벽지는 화이트다. 하지만 2층 바닥은 내추럴 오크로 골라서 1층과 구분했다. 1층 작은 방의 슬릿창이 있는 서쪽 벽은 블루로, 나머지 벽들은 그레이로 했다. 2층 안방은 침대 머리가 놓이는 남쪽 방향은 와인, 나머지 벽은 작은 방과 똑같은 그레이로 골랐다. 기본적으로 우리 집은 콘크리트 구조지만 다락만은 목구조다. 특히 다락 벽지로 선택한 나무 무늬 벽지는 진짜 나무처럼 보여서 보는 사람마다 합지로 만든 벽지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중문이 자리하는데, 중문 색깔은 로열블루로 골라 포인트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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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단지 내 다른 집들에 비해서 구조적으로 변화가 많다. 시공사 대표마저 전혀 새로운 평면이라 기대가 많이 된다고 할 정도였다. 바닥면적 12평 공간에 계단과 보이드까지 만들면서 우리가 계단에 이어 찾아낸 공간은 방이었다. 우리는 방에 최소한의 기능을 부여하고 공용 공간을 보다 넓게 만들고자 했다. 안방마저 최소한으로 만들어서, 침대를 한쪽 벽에 바짝 붙이면 붙박이장과 침대 사이 500㎜ 정도를 간신히 확보할 수 있었다. 붙박이장 문은 물론 공간 절약을 위해 슬라이딩 도어로 만들었다. 우리가 주방가구와 붙박이장을 위해서 만난 업체만 세 곳. 친환경 자재(E1이 아니라 E0 이상)를 사용했는지 꼭 확인했다. 주방은 상부장이 없는 아일랜드 방식으로 후드도 천장형이다. 싱크대 폭을 넓혀서 뒤쪽에 상부장을 대신하는 수납장을 만들었다. 조명도 안방, 작은방, 주방, 식탁, 거실뿐만 아니라 계단과 현관까지 모두 아내가 직접 골랐다.

우리 부부가 지난 4개월간 겪었던 일들을 지인들에게 들려주노라면 한결같이 “그냥 아파트 살아야겠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반대로 우리 부부처럼 단독주택에 살겠다고 이곳 단지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마치 무용담처럼 흥미진진하게 듣는다.

여행을 떠나다. 어디로?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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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말, 여름휴가 극성수기. 다들 집을 떠나 무더위를 피해서 산으로 바다로, 심지어 해외로 나가는 이때 우리 부부도 휴가를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린다. 3~4일 전부터 아내와 나는 열대야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설레어 잠을 계속 설쳤다. 드디어 D-Day. 며칠 동안 준비로 피곤하고, 잠을 제대로 못 잤음에도 새벽 일찍 약속이나 한 듯 깼다. 나와 아내는 집을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집으로 여행을 떠난다. 바로 오늘 7월 25일 새집으로 이사 가는 날이다.

새집에서 첫날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몸은 피곤한데 침대에 누워도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을 잔 듯 안 잔 듯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새벽에 깼다. 조용하다. 어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어 정원에 잔디는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일요일 저녁에야 가까스로 상하수도를 연결하고 월요일은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어 3일간 잔디에 물을 제대로 주지 못한 까닭이다. 깜깜해지고 나서야 수도꼭지를 한껏 틀어 모기에 수없이 물려가면서 잔디에 물을 줬다. 새벽에 안개가 내려 앉았는지 정원이 촉촉하고 잔디도 살아나는 거 같다.

옥상으로 올라가 새벽 풍경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처음 계단을 올라가던 때가 기억이 난다. 골조가 올라가고 한참 뒤에 계단이 만들어졌다. 계단이 없었기 때문에 2층과 옥상에서 바라 볼 풍경에 대한 갈증이 점점 심해졌다. 계단이 놓여지던 날,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창에는 창틀마저 없고, 건축 자재가 여기저기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2층에서 바라보던 풍경은, 그 동안 애타던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새벽 옥상은 오늘이 처음이다.

계단은 늘 오르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매번 나를 이끈다. 다락에 올라 문을 조심스레 열고 옥상으로 나간다. 조용히 마을을 감싸 안은 채 더위를 식혀주었던 안개가 곧 깨어나려는 태양에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분 좋은 상쾌함. 불어오는 새벽바람에 흔들리듯 천천히, 마치 휴양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깨어나 새로운 풍경에 마냥 취한 듯 손을 팔 다리를 천천히, 천천히 움직여 간다. 춤을 춘다.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어 춤을 춘다.

이웃, 우리는 더 설렌다

 

우리가 살고자 하는 곳이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 단지이기 때문일까?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살 때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을 만나도 인사 한 번 건네지 않았다. 우리 집이 아니고, 얼마 안 있어 떠날 거라는 생각 탓이었을까? 얼굴을 맞대는 자체가 낯선 탓이었을까? 하지만 여기에 와서는 이웃이 보이면 먼저 인사를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것도 입주하기 전부터.

우리보다 한 달 먼저 공사를 했던 집에 사람이 보인다. 인사를 하고 옆집에 이사 올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집을 구경하겠느냐고 먼저 제안을 해준다. 골조공사 중일 때 한번 둘러보긴 했지만 내부 공사를 시작한 이후 보지 못했다. 많이 궁금했던 터라 아내와 나는 기쁜 마음으로 집을 돌아본다. 입주 전에 틈틈이 방문해서 손을 보는 모양인데, 보냉 물통에 타온 시원한 냉커피를 한잔씩 따라 준다.

얼마 전에는 옆집에 케이크를 사 들고 갔다. 우리 집 공사로 인해서 먼지와 소음 등으로 평안한 일상이 방해받는 게 미안해서 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다 시간을 내어 준비를 했다. 마침 부부가 딸과 함께 뜰에 나와 있다. 즐겁게 담소를 나누다 현장소장과의 미팅으로 이야기는 중단되었다. 못다한 이야기는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우리 집 거실 정면에서 내려다보이는 길 아래쪽에 새로 짓고 있는 집. 여기는 아일랜드 출신 남편과 한국인 아내가 살 집이다. 남편을 5월 초 현장에서 만났다. 막 계약을 했다는 그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내와 집을 알아보려고 다닌 과정에서 느낀 거며, 여기에서 누릴 생활에 대한 기대며. 길가에 서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이웃들을 만났다. 모두 나름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우리 집과 달리 남편이 아닌 아내의 바람을 따라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부부도 있고, 벌써 2년째 이 단지에서 살고 있는 이웃도 있고, 손주들이 찾아오면 집에 가질 않고 할아버지 집에 계속 있고 싶어한다고 행복해하는 어르신도 있고, 아파트 전세 계약 만료에 맞춰 집주인에게 쫓겨나듯 서둘러 집을 구한 이웃도 있고, 닭을 키우는 쌍둥이 아빠도 있고, 마당 있는 집이 백배는 더 좋다고 하는 아이도 있고…….

입주 전에 잠깐 맛보았던 이웃들과의 작은 만남은 입주 후에는 더 큰 소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일상의 한 부분이 될 정겨운 이웃들과의 시간은 이사 온 우리 부부를 들뜨게 만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집, 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하여

 

지난 6월 24일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져들었다. 주가는 급락하고 환율은 요동치고. 브렉시트가 나쁜 거라서? 아니다. 브렉시트가 좋아서도 나빠서도 아니다. 브렉시트라는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좋은지 나쁜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이 불확실성은 투자 세계에서 가장 꺼리는 요소다. 하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이 유일하지 않을까?

우리는 브렉시트 결정이 나기 두 달 전에 이미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섰다. 집짓기라는.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가슴에는 설렘으로 가득 차오르고 머리에는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세 달 넘게 미답지를 걸어가면서 아내와 나는 성장했다. 미답지에서 맞닥뜨리는 머리로 계산할 수 없는 즐거움은 삶에 또 다른 활력이었다. 끊이지 않는 걱정의 자리를 즐거운 기대와 확신으로 채우는 법을,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은 내려놓고 큰 흐름에 내맡기는 법을 배웠다.

누군가가 말했다. 어둠은 단지 빛의 부재()라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가보지 않은 길은 단지 부지()할 뿐이다. 그 길에서 절망을 상상할 건지, 희망을 상상할 건지 그건 오롯이 내 선택이다. 아내와 나는 우리가 만나서 결혼하고 이제 집을 짓는 건 각각의 상황들에서 선택을 한 결과임을 안다. 걱정을 선택할 건지, 기쁨을 선택할건지. 매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집짓기를 통해 연습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행복하기로 선택한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기로 선택한다.

나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감히 또 선택하리라.

Special Thanks to...

 

이 자리를 빌어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집을 짓느라 수고 많았던 현장소장 이하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조영진(건축주)
나이 먹고서 새로이 일상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 아내와 수다를 즐기고, 생각이나 감상을 글로 옮기는 것을 좋아하고, 마당과 다락이 있는 집에 대한 로망을 가진 자라는 새싹 같은 어른이다.
구성
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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